가벼운 틀릭 한번이 곧 권위가 되는 시대다. 문죄인 정부가 국민청원이라는 이름으로 만든 인민재판장이 성황이다.

판사가 내린 판결이 마음에 안드니 수사하고 처벌해라. 24만명.   정치인이 마음에 안드는 발언을 했으니 올림픽 위원직에서 파면해라. 36만명.  올림픽 경기에서 팀원끼리 무언가 불협화음이 있었고, 잘은 모르겠지만 빙상연맹 탓도 있는 것 같으니 선수자격 박탈하고 연맹 처벌해라. 37만명.

절차도 원칙도 없다. 법적 근거가 없어도, 민주주의 제도의 아주 기본적인 룰에 어긋나도 상관 없다는 식이다. '우리들'의 분노가 곧 혐의고 죄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어처구니 없는 요구도, 20만 이상만 된다면 행정부 최고 권위가 직접 답변을 하고 조치를 취해야한다 '국민의 뜻'이니까. 

사법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판사 처벌' 청원. 사법정의를 위해 판사가 법리와 양심에 따라 내린 판결이 마음에 안 드니 판사를 수사하고 처벌하라는, 그야말로 반민주적인 요청. 24만명이 그런 '생떼'를 썼다고, 청와대가 답했다. 비위사실이 있다면 징계 가능하나 사법부 권한이라 지금은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대신 법원행정처에 청원 내용을 전달하겠다고. '국민의 뜻'을 공식적으로 전달해 압박하겠다는 거다. 이 답변을 들은 판사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판사 처벌 청원은 일례일 뿐이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생떼들이 '국민 청원'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청와대에게 명령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공화제에 대한 의식 없이, 밑도 끝도 없이 분노를 토하며 떼를 쓰는 건 국민도, 시민도 아니다. 마녀사냥에 가담해 죄 없는 여인에게 돌을 던지던 군중일 뿐이다.

링크 타고 들어가 클릭 두어 번 하는 게 청원이라는 숭고한 행위가 되는 시대.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누군가가 소리치며 불러온 가벼운 분노들이 손가락 끝의 가벼움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수십 만의 가벼움이 모여 권위가 되는 시대. 그게 곧 '국민의 뜻'이라는 거창한 의미가 되는 시대. 민주주의의 원칙과 절차는 사라지고, 군중의 머릿수가 독재를 하는 시대. 우리는 그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