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방송인가 우연히 지금 JTBC 에서 하는 차이나는 클라스를 김웅검사편 보고 있는데

산도박장 박 여사 이야기 아주 재밌네요.. 시간나면 한번 보세요..


<퍼옴>


산도박장 박 여사의 삼등열차

산도박은 기원, 당구장 내실, 모텔 등에서 벌어지는 소수 정예 도박판과는 다른 박리다매의 기업형 도박이다. 때문에 주로 조직폭력배들이나 그에 준하는 건달들이 주도한다. 기업형 도박장이다 보니 가담자도 많고 각자 맡은 역할도 구분되어 있다. 파친코처럼 혼자 하는 도박에 익숙한 섬나라와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름도 떼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박 여사’라는 아주머니였다. 박 여사는 산도박을 하다 구속되었다가 다행히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출소했는데, 출소 당일 집에도 들르지 않은 채 그길로 산도박장을 다시 찾아갔다. 도박장이란 도박장은 다 따라다녀 조선 팔도를 무른 메주 밟듯 돌아다녔다고 하는 박 여사는 수중에 한 푼도 없는 상태였지만, 그 강인한 의지에 놀란 창고가 음료수나 팔고 데라나 받으라면서 박카스 역할을 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도장 10개 받으면 제공해주는 탕수육 쿠폰 같은 거다. 하지만 재수가 없으려니 그날 마침 단속이 벌어져 박 여사는 출소한 지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시 붙잡혔다. 폭탄은 떨어진 데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낙숫물은 떨어진 데 다시 떨어진다.

  

나는 누가 큰소리를 내는 것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조사할 때도 시끄러운 것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나도 소리를 지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리를 치지 말아달라고 늘 신신당부하는 편이다. 설사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하더라도 추궁하기보다는 조근조근 설명하면서 협조를 구하는 편이다. ‘이렇게 증거가 개구리 알처럼 꾸러미로 널렸는데 부인하십니까? 그러면 판사님이 안 좋게 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나 저나 서로 얼마나 민망합니까. 어려우시겠지만 인정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데, 

물론 대부분 설득되지는 않는다. 후배들은 내가 조사하는 모습을 보고 ‘구걸 수사의 달인’이라고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계장 파트에서 자꾸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계장이 맡고 있는 어떤 아주머니의 수사가 쉽지 않나 보다. 가만히 들어보니 박카스 아줌마, 박 여사였다. 사실 조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조금 불안했던 것이, 계장이 박 여사에게 출소하자마자 또 도박장에 갔느냐고 이죽거리면서 살짝 긴장이 감돌았었다. 그이가 출소 당일 다시 산도박을 하러 가든 말든 사실 우리가 조롱할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극적인 상황이라 동정을 해줘야 할 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박 여사는 발끈하면서 얼음장같이 차가운 말투를 툭툭 내뱉고 있었다. 이미 집행유예를 달고 있었던 처지라 구속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 재판에서는 기존 집행유예가 취소되어 이전에 선고받은 형까지 살아야 하는 것이 명약관화했으므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그런데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계장이 계속 깐죽대니 어찌 발끈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좋은 법 아닌가요? 나는 노름을 하고 싶고, 밥보다 그게 더 좋은데, 그걸 왜 못하게 합니까?”

  

“아니 그럼 밥 먹는 것보다 사람 죽이는 게 더 좋은 사이코가 있으면, 그럼 사람 죽여도 되는 거요?”

  

“노름이 사람 죽입니까? 노름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잖아요. 밥을 먹고 싶어 하면 밥을 먹도록 해줘야 하듯이 노름을 하고 싶어 하면 노름을 하게 해줘야 그게 자유 아닙니까?”

  

“도박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잖아요.”

“무슨 악영향을 미치는데요?”

“그게 좋은 거면 사람들이 그리 싫어하겠어요?”

“아이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면 다 죄인가요? 그럼 왜 불효자는 처벌 안 하는데요? 불효는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거 아니요?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 아니고요?”

  

오호, 박 여사가 던진 질문은 실로 법률가들을 엄청 괴롭히고 있는 난제이다. 누구도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형법에 대해 갖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가 

‘도대체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가?’이다. 박 여사 말처럼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라고 모두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략)

  

‘가족을 생각하라’거나, ‘당신은 귀한 사람인데 이런 사소한 일탈로 감방까지 가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 ‘지금 참고 견디면 내일이 밝을 것이다’ 같은 말들은 우리가 피의자들을 설득할 때 흔히 써먹는표현들이다. 한때 그렇게 설득하는 것이 예의이자 친절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선량했고, 계몽주의자였으며, 합리와 논리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말들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은 극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고 늘 여유롭게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던보이의 낙관은 풍요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모던보이는 미래를 위해 지금을 견디라는 말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현실을 잊고 싶어 하게 하는 원인이 바로 그 현실과 현실의 연장에 불과한 미래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과연 도박이 이들의 현실을 망친 것인지, 아니면 폭력적인, 혹은 경쟁적인 사회 구조로부터 어쩔 수 없이 밀려난 결과가 도박장인 것인지 생각할 경륜을 가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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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 잠이 들었을까. 어느새 딸이 찾아왔다. 어려서부터 가난과 고된 노동에 지쳐서인지 딸의 현재는 몹시 무거워 보였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재촉하는 시간 속에서만 살아와서인지 그 나이 때 다른 아이들이 가질 법한 가벼운 치장의 흔적이 없어 보여 안쓰러웠다. 지치고 땀에 흠뻑 젖은 딸은 놀람과 걱정에 찬 눈으로 두리번거린다. 그 모습을 보아서일까, 박 여사는 왈칵 눈물을 흘린다. 하긴 누구도 얼룩덜룩 가난이 묻어 있는 어린 딸의 모습을, 그것도 검찰청에서,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딸은 낯익은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박 여사를 발견했다. 어느새 모두들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딸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마음이 아리기도 했거니와 그런 딸을 바라보는 죄 많은 어미의 심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딸은 성큼성큼 다가가 앉아 울고 있는 엄마를 가만히 안아준다.

  

아이도 울고, 엄마도 울고, 실무관도 울고 있었다. 사람은 공감을 하기 때문에 사람인가 보다.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라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거다. 나는 땀내와 탄내 그리고 어미의 통곡 속에 서 있는 딸아이가 마치 세상을 구원하러 온 구세주처럼 무거워 보였다. 아이는 어미의 죄를 보속하러 온 것이다. 파드득 홰를 치듯 죽어가는 형광등과 소리 없는 눈물과 어깨가 들먹거려지는 통곡 속에서 어쩐지 나는 평생을 살아도 세상의 절반도 알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누군가 법이 무엇이냐고 꾸짖듯이 물어보면 박 여사와 그 딸아이가 생각난다. 

그렇다고 내가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화두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그저 검사란 사람 공부하기 좋은 자리이구나라는 생각 정도를 하게 되었다. 

검사실은, 학구적인 분위기도 없고 과거에만 천착하지만, 법이 우리 사회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는 자리이다. 


뭐랄까,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사회 현실과 요청에 기초한 법철학을 시작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이상, 법의 지배와 실제적인 정의, 법적 안정성과 현실적인 법 감정 사이의 대립과 

긴장을 직접 마주하고,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요구들과 그것들이 어떻게 법으로 반영되는지, 또 어떻게 왜곡되며 법 실무가들에 의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경험할 수 있다. 

입법 절차에서 표출된 국민들의 요구와 감정, 정상배들의 불온하고 무책임한 책동들, 

그 사이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중용을 지키려는 노력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점철되어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형식적인 법률들, 그것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은 나무와 달라서 토양이 좋다고 늘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나를 보더라도 그렇다. 그 감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박 여사가 던져주었던 

질문에 대해 나는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욕구와 충동 속에서 사람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존재는 선택이 결정짓는다. 

결국 선택이 자아를 만드는 것이다. 가까스로 얼기설기 세운 답은 이 정도이다. 

사실 해답을 찾더라도 대답을 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윗 글은 도서 <검사내전> 에서 편집,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