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회원님들 짬내서 회원님들의 읽을 거리와


제 개인적인 주저리나 좀 풀어 볼까 합니다. 글쓰는 재주도


없고하니 긴글 싫으시면 뒤로가기 해주시면...


그 어떤 정보나 노하우는 이글에 없습니다. 그냥 인생주저리 입니다.


2003년 저는 23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강원도 자유여행으로 갔습니다.


집안이 부자도 그렇다고 배고를 정도의 가난도 없었지만


해외로의 신혼여행은 부담이 되었기에...


그러다 운명적이게 제 첫 카지노를 신혼여행때 간것이지요


당시 저와 아내는 첫째를 낳고 결혼한거라 3일정도의 시간밖에 없었습니다.


카지노를 보자마자 저는 속으로 직감 했습니다. 저곳이 나를 부자로 신분상승


해줄것이다. 결과 적으론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봅니다.


그렇게 아내와 저는 어린나이에 입장하여 당시 3일 경비 50만원을 가지고


1500만원을 여행기간동안 땃습니다. 가슴이 터질거 같았고 ㅎ 그 느낌적인


느낌 다들 아시리라 봅니다. 제인생 처음으로 어마한 큰돈을 만졌으니까요.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와 저의 삶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혼까지 카지노는 생각조자 못할 삶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지은지 20년이 훌쩍 넘긴 쓰레트 방1주방1  짜리 집을 얻어


살림을 시작 하였고 얼마 안가 둘째도 태어나고 나름 저에겐 열심히 살아야


하는 동기들이 많았습니다. 사범을 하는 저의 월급은 당시 100만원이 였습니다.


나름 더 벌고자 당시 시내로 통학하는 학생들 운행까지 해서 60만원을 더 벌었습니다.


차가 제차가 아니고 또 그 학생들도 관장님이 모아주신거라 제가 버는 수입은 160만원


나름 신혼이고 카지노에서 생긴 밑천으로 아껴쓰며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가난은 지독했습니다. 점점 더 제 인생을 옥죄여 왔고 부모님의 도움은


일시적인 해소뿌니 되지 않았죠. 부모님도 삶이 녹녹치 않았음을 알기에


죄송했습니다... 가까이 사는 처가집에선 하루가 다르게 저에게 잔소리가 심해지고


저는 매일 열심히 사는데 가난을 이겨내기가 점점 버거워 집니다.


첫째가 유아원을 드가고 부턴 더 힘들어 집니다.


아내와 저는 몇년째 옷한벌 사입을 여유조차 없이 가난은 서로의 사랑도


좀먹었고 저는 평생 운동만 해온 제가 무능하고 엮겹고 싫었습니다.


둘째가 조금만 더 크면 맞벌이를 하자고 어렵게 아내에게 말한순간


아마 그때 부터 였는지도 모릅니다. 어린 아내가 어린 제가 서로를 원망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는게... 하지만 맞벌이도 해보기도 전에 


아내는 이미 저에게 마음이 떠난지가 오래고  저녁에 친정에 애들하고


자고 온다는 날이 부쩍 늘어만 갑니다. 그리고 그날은 제가 이상하게 술이


땡기더군요 술은 먹긴했으나 좋아서 마신적은 없으니까요


그렇게 동내 친구와 슈퍼앞에서 소맥과 오징어땅콩 한봉지를 아껴먹고 있었습니다


그친구는 당시 경찰준비생으로 저와 같은 처지였죠 


술을 아껴아껴 얼마나 먹었을까? 그때 제 인생 전부가 무너집니다.


바로옆 모텔에서 나오는 ef쏘나타! 그차 조수석에 웃으며 앉자 있는


여자가...술이깨고 기분이 더럽고 몸이 떨렸습니다.


전화를 했는데 장모가 받습니다. 잔다더군요. 그리고 끊어 버립니다.


이렇게 무시당한게 한 두번은 아니지만 그날만큼은 분하고 화가 나고


온몸이 떨렸습니다. 집으로와서 밤새 멍한체 오만생각을 다했습니다.


아침에 아내는 두아이를 유아원에 보내고 왔고 저는 이미 제가 아닌체


배신감과 배신감만이 제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수일을 그렇게 저는 영혼이 나간체 기다렸습니다.


다시 아내는 애들과 주말에 자고 온다며 가더군요


따라갔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 쏘나타가 처가집 앞에 스더니


하...가더군요... 따라갔습니다. 


모텔..  온 몸이 떨리고 눈이 돌아가고 침착하려고 했지만 안됩니다.


카운터에 묻고 올라가서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제 인생 가장 더러운년이 나의 아이의 엄마라는것에 분노하며


알몸인것들을 죽도록 팼습니다 죽을 힘을다해 팼습니다.


제인생은 그것이 마지막이였다고 


다 죽어서 내 분을 풀겠다고 뿌러져라 팼습니다.


얼마뒤 경찰이 왔고 


얼마뒤 이혼을 했고


그 어린 자식들이 엄마 엄마 하는 모습에


또 애 엄마가 나에겐 배신했지만 모성만은 어린나이에도


있었기에 또한 저는 죽을려고 했기에


제 통장 전 제산인 300만원 남짓한 결혼생활 동안 남긴 


두아이와 함께 눈물과 함께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죽으려고 집에서 나가지도 씻지도 먹지도


않은체 누워만 있었습니다. 몇일이 지낫을까?


동생 빵과 우유 담배를 나두고 갑니다.


달고 맛있습니다. 그렇게 3년을 부모와 동생에게


음식을 받아 먹으며 누워만 있었습니다.


방엔 빵봉지 라면봉지 술병 등 온갖 쓰레기로 가득했고


아무생각을 안했습니다. 아니 그 생각이란 것을 안하려고 


생각하고 또 그 생각조차 안하려고 까만것만 생각하고 또 그 생각조차 안하려고..


문밖에서 아버지가 우십니다.


살자고...미안하다고


저도 울었습니다. 살고싶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시작할수 없을정도로 몸이 망가졌다고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몇일뒤 방문앞에 돈 10만원과 아버지의 차키를 주시며


바람이라도 쐬고 오면 청소라도 해주신 답니다.


불효자는 그렇게 3년넘게 청춘을 버리고서


나옵니다. 동생이 그간 결혼을 했습니다.


모든것이 죄스럽고. 나오는길 가을 하늘보며 부자자 되겠다고


내 스스로에게 다짐 합니다.


그리고 강릉으로 바다를 보려가는데... 


표지판에 하이원...강원랜드...


가슴이 다시 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