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13일

 

오늘은 어제 승을했던 코타이부터 시작을했다.

 

1시간30분정도 여기저기 관망을하고 커피한잔을 할무렵

정말 누가봐도 노숙자같은 옷을입은 중국인 3명이 독다이를 하고있다.

하도 궁금해 십여분간 뒷짐지고 구경을 하는데 정말 잘맞춘다.

 

그러길30여분됬나.....

뱅강세인 상태에서 플1뱅2플1뱅4플1뱅2플1  상황이었다.

난 슬며시 1000불을 뱅에 붙여 올렸다.

역시나 한방에 8 잡고 승~

2000뱅 승~

4000뱅 승~

 

내손엔 이긴 7000불어치 칲이 잡혀 있었고

한번더 8000 뱅에 올리기가 애매하였다.

 

현재 플1개에 뱅이 4개이상 안내려왔기 때문이다.

한템포 쉬어본다.

 

여전히 중국인3명은 뱅에 십만불을 올려논 상태였고...

중국인들이 먼저 딜러에게 카드 오픈하라고하고 ...

딜러가 잠을 잘 못자서인지 하품울 연신해대더니

타~닥  카드를 뒤집는데 자니. 7이다.

 

정말 한 십분여를 이리저리 쪼이더니 딜러에게 카드를 던지는데

10. 10 이다  ㅎ  ㅎ

벳을 안했지만 내자신이 더 떨리고 긴장해서 봤던것 같다.

 

이제 다시 플 1 상황이 됬다.

다시 뱅에 오만불 올리는 중국인들 난 망설임끝에 다시 관망만하고...

 

드디어 딜러손에 카드가 돌아가고..

딜러 카드 오~픈!

10.9~

중국인들 테이블을 쳐가며 난리를핀다.

주위 사람들 모이고 카드를 부스러질듯 비비다 또 딜러에게 던지다시피 하는데

또 10.10이다 ㅎ  ㅎ

 

그 다이를떠나 돌아다니다 밖으로나와 하늘을 쳐다보았다.

답답함도 있었고 애들도 보고싶고 해서이다.

한국에서도 가까이 있지못했지만

지금 이곳은 더더구나 남의 나라이기에 솔직히 더 절실히

보고싶을때가 많다.

 

오후6시~

 

오후에 승한 돈으로 이번엔 다시 갤럭시로갔다.

난 왠지 갤럭시가 편하다.

마바리판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분위기와 넓은 매장이 맘에 들어서일까...

 

다시 한시간이상 여기저기 맘에드는 다이를 찿다가 한국사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0여분 관망을 해보니 분위기가 썩 좋은 다이였다.

내가 찾는다이다.

 

플3뱅2플2벵2플1이었다.

마음속으로 플3뱅2플2뱅2플1까지 베팅해보고 자신이 생겨

이번엔 진짜로 2000불 플에올린다.

한국인 여자분 욕을 정말 시원하게한다.

야~  ** 이번에도 까버려 조 ㅅ 도...

ㅎ  ㅎ

그런데 진짜로 4.4 를 깐다.

 

딜러카드 합이5였던것같다.이번엔 뱅에 2만불 올린다.

ㅎ ㅎ

나는 쉬었고 한국인들이 올렸다.

 

이번엔 플이 이겨 나는 그다이를 떠나고..

 

그렇게 밤 9시 무렵까지 생바를하고 돌아왔다.

다리가 아프다.

아직 몸이 예전같지않아서일까...

많이 힘들다.

 

오늘의 전적은 3000불 패이다.

그뒤로 거의 이기질 못하고 3000불 오링되어 민박집에 돌아와

후기를 올리고 있다.

 

하루하루 고되고 힘들다.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하는것같다.

 

하지만 지금내게 남겨진 자본으로는 아무것도 할수없기에

오늘도 했지만 내일도 해야할것같다.

 

어제 올린후기에 어느분이 가족애기도 불편하고 내가 이렇게 사는것에

조금 불편한 애기를 하셨다.

 

다 맞는말인것같다.

노름애기에 가족이라니..................

 

난 이혼하고 애들과 떨어져산지 어언 9년이 돼가고 모질게도

죽지못해 이렇게 살고있다.

처음에는 생활비조차 주지못했다.

생바시작할땐 1억이라는 마지막 종자돈이나마 있었지만

어떻게 어떻게 다잃고 죽을려고 하다가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자본없이 할수있는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밖에 없었다.

지금도 내게 비아냥거리며 애들을 그렇게 사랑한다면 어디가서

노가다라도 하라고 하지만

 

그분들에게 묻고싶다.

나이50에 기술도없고 가진 재산도 하나도 없는 장애까지; 안고 살아가는 내가

도대체 뭘할수있는지!

노가다해서 4명의 식구 를 먹여 살릴수 있다면 정말 하고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지난 6년이 넘는 생바동안 그래도 꼬박꼬박 한달도 빠짐없이

내 집사람과 애들에게 생활비 애들용돈 단 한번도 빼먹지않고 보내며 살고있다.

남들은 나에게 모질게도 게임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않으면

내 가족에게 생활비를 줄수가 없는데 .....

어느 누구도 내 상황이 된다면 나와 같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올린 후기는 전부 논픽션이다.

ㅎ ㅎ

2000년대에는 성추행이라는 단어도 갑질이라는 단어도 잘 존재하지 않았다.

스마트폰도 없었고 자기 집안에 경찰 의사 검사한명 있으면

든든하고 사람만 죽이지 않는다면 쉽게 빠져 나올수 있는 정이많은시대였고

돈이면 다되는 시절이었다.않좋은 생각이지만 말이다~

 

형사생활10년에 집한채 못산다면 벼 ㅇ 신 이라고 하는 시대였다.

최순실과 같은 사람은 비일비재했었고 형사가 진급할려면 반장에게 반장은 계장에게

계장은 과장에게 과장은 서장에게 돈을 줘야만 승진할수있는 시절이었다.

 

이글에 수긍을 하신다면 나이40~50 이실테고

수긍을 못하신다면 40전이신 분들이실 것이다.

외롭고 우울해 글을쓰다보니 2년여가 된겄같다.

외로운 나에게 힘을주시는 분들이 좋아 내 과거와 현재를 써내려가고

또 내게 힘내라는 글들과 이런저런 사연을 주시는 분들이 좋다보니

지금까지 온것같다.

 

솔직히 응원의 댓글에 힘을얻고 용기를내서 내일을 사는게

행복했다.

그래서 글을 써왔다.

 

그동안 난 혼자이지 않았다.

많은 분들이 힘내라고 힘과 용기를 주셨기에....

 

내가 너무 자만해졌던것같다.

 

혹시라도 내 글이 불편햐셨던 분들에겐 마지막으로 사과를 드리고싶다.

 

이글을 끝으로 다시는 글을 쓰지않겠습니다.

 

그동안 응원해주신 한분한분게 감사드립니다.

 

곡 생바성공해서 서울에 작은 식당이라도 열겠습니다.

 안녕히 걔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