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팀플레이




  게임은 계속 진행 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한서의 배팅구 앞에 ‘2’와 ‘9’가 펼쳐져 나왔다. 합이 ‘11’이고 딜러의 업 카드는 ‘6’이었다. 더블 다운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태삼은 배팅 금액을 두 배로 늘리는 좋은 기회를 작은 배팅으로 날려 버린 한서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이번엔 한서가 또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히트 혹은 스탠드 여부를 묻는 딜러에게 한서는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카드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딜러는 한서가 그냥 히트를 할지 아니면 더블 다운을 할지 고민하는 것으로 생각 하고 고민의 시간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VIP 룸에서 달랑 10 달러를 걸어 놓고 장고를 하는 그를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딜러가 다소 불만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손님? 히트입니까 스탠드 입니까?


  한서의 옆에 앉아 있던 일본인이 기도를 드리는 수도승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화를 억누르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한서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딜러에게 조금만 더 고민할 시간을 달라는 듯 손을 들어 보이며 고민의 시간을 멈추지 않았다.


  “대체 왜 저러는 겨?”


  태삼 역시 한서의 기이한 행동을 참을 수 없었는지 그대로 눈을 감고 말았다.

  잠시 후, 플로어 퍼슨이 한서에게 다가와 말했다.


  “손님, 이런 식으로 계속 고의적으로 게임을 방해 하시면 다음부터는 출입 정지를 당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음부터 라고요?”


  “예 맞습니다.”


  “그 말은 지금은 괜찮다는 거네요. 저는 어차피 오늘만 하고 안 할 거라서요.”


  한서의 뻔뻔한 대답에 플로어 퍼슨도 당황스러웠는지 바로 대답을 못하고 쩔쩔 맸다. 하지만 한서의 행동을 제지할 다른 방법이 있는지 찾기 위해 마지못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히트!”


  숨이 멎을 듯 한서의 입만 바라보던 딜러가 이제야 숨통이 트인 듯 안도하며 추가 카드를 한서의 카드 위로 펼쳤다. ‘10’ 카드 였다.


  “21!”


  짜증 섞인 딜러의 카운트가 있자 한서는 이번에도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딜러에게 들어 보였다. 순간 아까부터 계속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던 배불뚝이 중국인 사내가 더 이상은 남은 인내심이 바닥이 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칩을 챙겨 들고 다른 테이블로 가 버렸다.


  그 후로도 한서의 기행은 계속됐고, 일본인 사업가 부부, 캄보디아 무기상 등 동반 플레이어들 모두가 테이블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급기야 이제, 그 테이블에 플레이어라고는 한서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딜러는 할 수만 있다면 자신도 한국에서 온 키 크고 젊은 진상 손님을 피해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치도록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한서는 마지막 동반 플레이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듯 웃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태삼과 다영을 바라보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장난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진지하고 날카로운 모습이었다. 그것은 흡사 목숨을 걸고 결전을 치르러 가는 검투사의 모습을 상기 시켰다.


  하지만 잠시 후, 무엇인가를 결단한 것이 분명한 플로어 퍼슨이 무슨 중요한 지령이라도 전달하듯 한서가 있는 테이블로 뚜벅 뚜벅 걸어 와 검투사의 앞을 막아섰다.


  “손님, 계속 이런 식으로 하시려면 이제 그만 일어서 주셔야 겠습니다.”


  “예, 그러죠.”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한서의 모습에 플로어 퍼슨도 적잖이 당황했는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앓던 이를 뺀 것 마냥 시원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가기 전에......, 딱 한 판만 더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플로어 퍼슨이 무슨 큰 아량이라도 베푸는 것처럼 시원스럽게 답했다.


  “고마워요.”


  한서는 매너 있는 말투로 감사를 전했고, 플로어 퍼슨도 골치 아픈 문제 거리를 해결 한 게 스스로 자랑스러웠는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굳어진 것은 그로부터 1초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한서는 테이블에 앉은 이후로 단 한 번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백만 달러짜리 에메랄드빛 칩을 들어 배팅구에 힘 있게 올려놓았다. 딜러는 한서가 자신의 칩을 챙겨 가려는가 보다 하다가 그가 갑자기 고액의 칩을 배팅구에 올려놓자 당황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하지만 그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한서의 그 다음 행동이었다. 그는 경험 많은 프로 도박사의 현란한 손놀림으로 백만 달러짜리 칩들을 정확하게 세 개 씩 모든 배팅구에 올려놓았다. 모두 2천 100만 달러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삼이 순간 태서의 전략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 차렸는지 신음을 내 뱉으며 뜻 모를 말을 중얼 거렸다.


  “저 녀석이......, 분신술을 부리려고 했던 거고만.......”


  “분신술이라니요?” 다영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한서는 처음부터 팀플레이를 원했던 것이다. 블랙잭 게임은 아무리 고수라 할지라도 실력 없는 동반 플레이어를 만나는 순간 전략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을 자주 겪는다. 블랙잭은 개인 플레이어와 딜러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플레이어들 전체와 딜러의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기 때문에 딜러의 마지막 카드를 ‘10' 으로 받게 해 딜러 버스트의 상황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경우나 ’로우 카드‘로 받게 해야 하는 경우가 명확할 때 플레이어들 전체의 협동 작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직전의 카드들이 대부분 ‘로우 카드’ 였다면 확률 상 다음 카드는 ‘10’ 카드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10’ 카드가 필요한 유저라 할지라도 플레이어 전체의 승리를 위해 ‘스탠드’를 선택하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태삼이 이른바 선수들을 조직해 팀플레이를 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한서는 괴이한 행동을 통해 자신의 중요한 게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허접한 동반 플레이어들을 모두 제거시켰고 일곱 개의 배팅 구에 모두 배팅함으로써 마치 분신술을 부리듯 자신과 똑같은 실력을 지닌 일곱 명의 동반 플레이어를 자리에 앉히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즉, 이제 이 블랙잭 테이블에는 일곱 명의 실력 좋은 프로 도박사가 한 팀으로 게임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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